화물차 밑으로 들어가는 ‘언더라이드’ 사고 치사율 3배
의무장착 60만대에도 불구 상당수 미장착 운행

승용차가 화물차를 들이받는 추돌사고의 경우 후부 안전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반 화물차 관련 사고보다 치사율이 높은 언더라이드 현상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규정에 적합하지 않은 후부 안전판이 설치된 경우(위)와 안전 기준에 적합한 후부 안전판이 설치된 경우(아래)다. (사진: IIHS)

승용차가 화물차의 옆이나 뒤를 들이받을 경우 차체가 낮은 승용차 앞부분이 화물차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언더라이드)이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총중량 3.5톤 이상 화물차에는 일정 기준에 후부 안전판 설치가 의무화 돼 있다. 하지만, 일반도로에서 기준치 미달 또는 불법 개조 및 안전판이 탈거된 차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 화물차와 승용차 간의 ‘언더라이드(Under Ride)’ 사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언더라이드 관련 사고는 여타 화물차 관련 사고에 비해 치사율이 2배 정도 높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화물차의 적재함 부분이 범퍼가 아닌 승용차의 A필러(전면 유리창 부분)을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안전벨트와 에어백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승용차 운전자의 머리가 화물차 하부와 비슷한 위치에 있어 사고 시 사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처럼 위험성이 큰 언더라이드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안전판’이다. 안전판은 화물차량 측면과 후미에 부착하는 두툼한 패널(pannel)을 장착해 사고 시 승용차가 화물차의 밑으로 깔리는 것을 방지해 준다.

적합한 안전판만 사용해도 사망률 감소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의 실험에 따르면 규정에 맞는 안전판을 설치만 한다면 언더라이드 현상으로 인한 승용차 운전자의 사망률을 대폭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판이 충돌 시 승용차가 화물차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냄으로써 에어백과 안전벨트의 도움을 충분히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차량 하부의 높이가 일반 승용차보다 높은 대형 화물차의 경우 안전판 장착을 의무화해온 국가가 많다.

대표적으로 화물운송 선진국가인 유럽은 측면 안전판과 후부 안전판 장착이 모두 의무화 돼 있으며, 미국도 최근 후부 안전판에 이어 측면 안전판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안전판 장착을 독려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의 트레일러 언더라이드 사고 시연 모습.

적발돼도 나 몰라라…안전불감증 만연

국내의 경우도 타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다. 승용차보다 차체가 높은 3.5톤 이상 화물차에는 반드시 후부 안전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다. 안전판의 세로 폭이 10cm 이상이어야 하고, 바닥과의 간격은 55cm 이내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기준도 마련된 상태다.

그러나 본지 취재결과 후부 안전판 설치가 의무화된 대형 화물차 중 상당수가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안전판을 단 채로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세로 폭이 기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안전판을 설치한다거나, 안전판과 바닥의 간격이 1.5배를 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일반 쇠 파이프를 대충 용접하여 장착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부식되어 부서지기 직전의 안전판을 장착하는 등 대체로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적절한 안전 기준에 맞지 않게 설치한 안전판의 경우 충돌 즉시 부서져 언더라이드 사고 예방은 커녕 오히려 언더라이드 현상 시 승용차 운전자에게 더 큰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안전 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후부 안전판 미설치 또는 부적합으로 인한 처벌은 ‘전무(全無)’하다. 구체적인 과태료 부과 기준 자체가 없고, 적발된 차량에는 원상복귀 명령만 내릴 수 있다.

자동차관리법상 안전판 장착에 대한 기준과 대상이 확실하게 명시돼있지만, 실제 규정에 맞는 설치는 운전자의 양심에 맡기는 꼴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물차 운전자들의 안전불감증도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형식적 ‘장착 의무화’에서 벗어나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안전판을 설치해야 하는 3.5톤 이상 대형 화물차는 모두 59만 8천여 대. 이들과 충돌 시 언더라이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승용차의 수는 약 2천만 대로 33배 수준에 달한다. ‘타인을 위한 안전벨트’라고 불리는 안전판 설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하지만 계속되는 단속과 신고에도 불구하고 과태료 처분이 없고 공사현장 등 험로에서의 운행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설치를 뒷전으로 미루는 운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것이 아니라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태료 부담이 없는 현행 제도로는 안전판 설치를 독려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운송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무관심과 대형 화물차 운전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도로 위 수많은 승용차들이 위험에 노출돼있다.”며, “안전판 규정 미준수 차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동시에 화물차 운전자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올바른 장착만으로 언더라이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판. 나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매듯,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규정에 맞는 안전판 장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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