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많은 경우 삶의 어려움은 돈에 연결 된다. 돈이 필요한 만큼 없기 때문이며 돈만 충분히 있으면 일단은 상황은 해결 된다.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초심으로 돌려놔도 역시 돈이란 놈이 있어야 문제가 풀리는 것이다.

그러나 돈으로 푼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또 다시 돈이 필요한 문제로 돌아온다.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돈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심의 대상을 우리의 마음에서 잠시 돈이란 놈의 초심으로 바꿔보자.
돈 즉 화폐의 태생은 그 옛날 물물교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단지 물건의 교환수단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화폐의 태생적 가치는 실물의 필요성에 국한된다. 다시 말하면 화폐의 양은 인류가 생활하기 위해 생산한 물건의 양 만큼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영악한 인간이 다른 게으른 인간에게 돈을 빌려주어 먹고 살 물건을 교환하게 하여 주면서 대신에 이자를 받음으로써 화폐의 자가 증식이 시작되었고, 이는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비롯된 죄의식의 태생과도 일맥상통 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순기능만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꽃으로 사랑 받을 수 있겠지만, 이미 작금의 주식시장은 돈이 돈을 얼만큼 벌 수 있는가를 놓고 투기하는 논 놀음판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단계까지 타락하여, 이제는 누구도 돈의 흐름과 양을 알 수도 통제 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돈은 국경을 넘나들며 실물경제의 정상적인 흐름마저 무너뜨려 지구의 한정된 자원의 고갈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신성한 인간의 노동의 가치도 제멋대로 주무른다.

이제 인류는 돈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암세포처럼 필요이상으로 증식되는 돈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이 돈에 중독이 되었다는 증거다. 돈이 스스로 이자를 붙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과하게 이자를 붙이는 것이다.

상환능력 범위 안에서만 돈이 유통된다면 요즘처럼 은행이 초대형화 될 필요가 없다. 돈으로 돈을 벌겠다는 과욕으로 인한 부실대출의 필연적 결과로 회수율이 낮아서 정상적인 예대차의 수입이 손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듯, 일단 다수의 예금원을 확보하여 갈 때까지 버텨 보겠다는 발상 이상이 아닌 것이다.

돈의 초심에 근거하여 빛나는 성과를 입증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의 성공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담보 필요 없음’ ‘신원보증 필요 없음’ ‘소액 대출’ 가장 필요한 조건 ‘가난’ ...
이러한 대출 조건을 원칙으로 시작한 은행이 30년이 지난 지금 1,200개의 지점에 20,000명이 넘는 직원과 37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달 4,000만 달러가 넘는 융자를 해주면서도 대출회수율 98%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 은행의 성공은 단지 영업적 실적에 있지 않고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의 가난을 스스로 극복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이 은행에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여 했다.

가난 퇴치라는 사회적 기여도에 있어서도 충분히 상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돈의 지배하에 허덕이는 현세의 인류에게 돈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살아 있는 훌륭한 스승으로서 그 가치를 배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통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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