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으로 시작(始作)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코흘리개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서 동무들과 뛰놀 때 자주 내뱉는 말이 시작(始作)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누구는 쫓고, 쫓기고, 공을 차고, 혹은 말을 타기 시작하고, 말이 되고는 했습니다. 무작정 시작과 함께 뛰놀던 시절이 지나고 시작과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돼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새 시작이라는 말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단어가 돼버렸습니다. 시작하는 것은 무언가로부터 성공의 결과를 얻기 위한 첫 행동이자 다짐이자 열정이자 의욕인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약속은 적게 하고 책임 있는 결과를 위해 많은 행동을 합니다. 세상을 활자로 본다면 가장 많이 자주 쓰이는 단어가 뭘까요? 바로 시작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신화에 나오는 神 중에 야누스(Janus)라는 神이 있습니다. 야누스는 사물의 시초를 주재하는 신으로, 문의 수호신이 되어 앞뒤를 향한 2개의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문은 모든 행동의 시초를 상징하므로 야누스는 종교의식 때 여러 신의 선두에 섰습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월인 January가 바로 야누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시작이 좋으면 한 해가 풍요로워진다는 의미로 야누스를 시작의 신으로 모셨는데 왜 인간의 양면성을 대변하는 말로 전락이 됐을까요? 18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철학자 샤프츠버리가 <인간․예절․의견․시대의 특성들>이라는 책에서 “한쪽 얼굴로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다른 쪽 얼굴로는 노여움을 감추고 있는 작가의 야누스 얼굴(이중성)”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쓰면서 ‘야누스’를 단박에 위선적인 인물로 탄생케 했습니다. 물론 이는 잘못된 그야말로 작가의 일방적인 왜곡된 해석이었지만 다소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표현을 사람들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지요. 잘못된 표현이 회자되면서 야누스는 슬프게도 이중성의 대명사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엉뚱한 시작이 신화 속의 인물을 확 바꿔놓기도 합니다. 좋은 시작이 좋은 결과를 갖기에는 정말 많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줍니다.

떤 결과를 갖고 올지 모르는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떨리는 것은 당연지사요, 두렵고, 설레고, 긴장되고, 속이 메스꺼운 등 온갖 신경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시작이라 생각하고 인내하겠습니다. 그리고 노력 하겠습니다.
그 동안 전문 매체가 활성화 돼 있지 않은 불모지여서 업계 관계자들도 다소 낯선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전문 매체의 활성화가 전문 업계를 살립니다. 이점 업계 종사하시는 분들도 깊이 공감해주셨으면 합니다. 누구나 좋은 시작을 하지만 아무나 좋은 결과를 갖고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용차매거진>의 시작을 지켜봐 주시고 힘을 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소비가 아닌 생산을 이뤄내는 상용차업계와 발맞춰 소장하고 싶은 매체를 만들겠습니다.

지금 <상용차매거진>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編輯局長 呂秉九 拜上

저작권자 © 상용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