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보조금,
운임에 포함돼 화주 덕보고
유류세 내리니 되레 손해

운송업계 불만 토로해도
정부는 중복혜택 불가 입장만

정부가 이달부터 한시적 유류세 인하에 나섰지만, 영업용 화물차주들은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주유 중인 화물차들.
한 영업용 화물차주가 화물협회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
유류세 인하에 따라 보조금을 낮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영업용 화물차 운전자 김 씨는 최근 주유 후 발행된 영수증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유류세가 인하되면서 줄었어야 할 유류비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지역 화물자동차협회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풀렸다. 메시지에는 ‘유류세가 인하됨에 따라 유가보조금 지급단가를 낮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화주나 주선업자들이 유가보조금을 감안해 운임을 주고 있는 마당에…. 울화통이 터졌다.

유류세도 보조금도 80원씩 줄어
지난 11월 6일 정부는 치솟는 기름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내년 5월 6일까지 6개월간 유류세율을 15% 인하하는 것이 골자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한시적인 인하라곤 해도 당장 기름 값 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혜택이 모든 이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유가보조금을 지급받는 영업용 화물차주들은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유류세가 80원가량 줄었지만, 유가보조금 지급단가 또한 그만큼 내려앉은 탓이다.


통상적으로 유류세 인하에 따른 유가 하락은 주유소에서 단가를 낮춰야만 체감할 수 있다. 반면, 유가보조금 지급단가는 변동 즉시 반영된다.

주유소 유가는 기존 유류 소진 후 천천히 내려가는데 반해, 같은 기간 보조금은 확 줄어드니 정작 화물차주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차고지에서 만난 한 화물차주는 “유가보조금은 80원 깎였는데 주유소 기름 값은 40원밖에 내리지 않아 오히려 비싼 값을 주고 기름을 넣었다.”며, “경기 부양이 목적이라더니 애꿎은 불법 자가용 운송업자만 혜택을 보고 영업용 화물차주들은 손해를 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책 수정 vs 중복혜택 불가 대립각
불만 여론이 커지자 일부 화물차주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까지 요청하고 나섰다.

‘누굴 위한 유류세 인하입니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한 청원인은 “유류세 인하 시행으로 화물 운송사업자들은 더 큰 경제 부담을 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유류세가 내려간 만큼 영업용 차량에 지급되는 유가보조금도 동시에 낮춘다니 이런 조삼모사 같은 말장난이 어디 있느냐”며, “2008년 유류세 인하 당시에도 지금과 똑같은 이유로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8년 유류세 인하 당시 유가보조금은 55원이 삭감된 반면, 실제 주유소 판매가격은 30~40원만 내려가 영세 운송업자들의 유류비 부담이 되레 가중된 바 있다.

청원인은 또 “40만 영업용 운전자와 그들이 부양하는 100만에 가까운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만큼 기름 값의 실질적 인하를 위해 다시 한 번 정책을 수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부에 정책 재고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화물차주들에게만 중복혜택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유류세가 변동되면 유가보조금도 함께 오르내리는 것은 법안에 이미 명시된 사안”이라며, “유가보조금은 다른 차량 운전자의 유류세(주행세)를 재원으로 하는데 화물차 운전자만 이중으로 지원해줄 수는 없다.”고 전했다.
 

참고로 유가보조금의 정확한 명칭은 ‘화물자동차 유류세 연동 보조금’으로 지급 단가가 유동적이다. 지급 단가는 <유류 구매일 현재 유류세액에서 유가보조금 도입 당시(2001년 6월) 유류세액을 뺀 나머지 금액>이다. 도입 당시 경유 유류세액은 리터당 183.21원이다.

일부 화물차주는 이번 유류세 인하에 영업용 화물차주를 철저히 무시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유류세를 인하하는 취지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인데, 영업용 화물차주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느냐고도 되물었다. 나아가 유류세 인하가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조치라면 유가보조금도 한시적으로 동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 영업용 화물차주는 “유류세 인하 취지는 경기가 어려우니 정부가 나서 국민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인데, 화물차주들은 왜 제외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왜 유류세 조정은 되고 유가보조금 비율 조정은 안 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악용사례 많고, 실도움 안 된다면…

유가보조금, 이대로는 안 된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유가보조금 조정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유가보조금 정책의 실효성도 도마에 올랐다. 유가보조금 존폐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모양새다.

유가보조금을 유지해야한다는 입장에서는 공공성을 들고 있다. 정부가 화물운송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영세 규모의 운송사업자를 돕기 위해 유가보조금을 지원하는 만큼 유가보조금은 영업용 화물차주가 누려야할 권리라는 주장이다.

반면, 유가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이들은 유가보조금 자체가 실효성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영세 화물운송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보조하는 세금이 본래 취지에 어긋나게 쓰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5톤 카고트럭을 몬다는 한 차주는 “업계에선 이미 운임에 유가보조금이 포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화주나 알선소는 보조금이 나오니 이 정도 값이면 되겠구나 생각한다.”며, “유가보조금은 화물차주가 누리는 혜택이 아니라 화주와 알선소의 주머니를 채우는 돈이 된지 오래”라고 꼬집었다.

운송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보조금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이를 악용하는 화주와 알선소의 꼼수가 업계 내 만연한 것이 사실”이라며, “유가보조금 존폐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이 같은 부당함을 바로잡고 적정 운임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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