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 수급 악화로 트럭 생산 차질
유럽·북미, 높아진 트럭 수요 못 따라가
작년 9월부터 판매량 감소세로 전환
업계 “부품 수급 총력…내년 정상화” 전망

빠른 속도로 회복하던 전 세계 트럭 시장에 또 제동이 걸렸다. 차량용 반도체 칩 수급난이 악화하자 유럽과 북미 시장의 트럭 판매량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트럭 수요는 높지만 차를 생산하지 못해 판매 대수가 줄어드는 상황으로, 지난해 상반기 내내 전년 동기 대비 상승세를 이어나가던 유럽·북미 트럭 시장은 부품 수급난이 심해진 지난해 9월부터 감소세로 전환했다.

글로벌 완성차업계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마틴 다음(Martin Daum) 다임러트럭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말 미국의 한 경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임러트럭이 당면한 가장 큰 위험요인은 반도체 수급난”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불황보다 반도체 수급난이 더 우려스럽다.”라며, 그 이유로 “트럭은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기 때문에 경기 불황에도 최소한의 수요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부품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차량 생산 자체가 중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부족…9·10월 유럽·미국 트럭 판매 10%↓
전 세계 트럭 시장의 발목을 잡은 반도체 부족 사태는 지난해 초 시작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여러 반도체 제조업체가 생산량을 줄인 가운데 지난해 들어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후 각국 정부와 완성차 및 반도체 업계의 협력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으나, 지난해 9월 글로벌 반도체 제조 기지인 동남아 지역이 변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장 문을 닫으면서 상황이 다시 악화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인해 2021년 전 세계 완성차업계의 매출 손실이 2,100억 달러(한화 약 24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차량 생산이 어려워지자 잘 나가던 유럽과 북미 트럭 시장이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초부터 국가 간 교역이 재개되고 물동량이 늘면서 억눌렸던 트럭 수요가 풀리자 유럽과 북미 트럭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 흐름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실제로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내 총중량 3.5톤 이상 트럭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6월에 전년도 동월 대비 26.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반도체 등 부품 수급난의 영향으로 트럭 생산량이 줄면서 증가세가 2.7%(7월), 3.5%(8월)로 둔화하더니 급기야 9월과 10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3.0%, 13.9%까지 감소했다. 10월의 경우 독일(-24.0%), 스페인(-32.0%), 프랑스(-23.0%) 등 주요 상용차 시장의 감소세가 더 두드러졌다.

북미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 매체 워즈오토(Wards Auto)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북미 내 총중량 15톤 이상 대형트럭(클래스8 트럭) 판매량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50% 수준 성장했으나, 7월(16.3%), 8월(2.8%)을 거쳐 상승세가 주춤하더니 9월과 10월에는 각각 10.0%, 9.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던 지난 2020년보다 이번 부품 수급난의 피해가 더 컸다는 뜻이다.

주요 완성차업체도 부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볼보트럭이 공개한 3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볼보트럭의 2021년 3분기 트럭 수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트럭버스와 스카니아 등을 포함하는 폭스바겐 산하 트라톤 그룹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전체 트럭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한 데 반해 3분기 들어 이 증가세가 39%로 둔화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다임러트럭의 지난해 판매량이 이번 사태로 인해 평년 대비 5~6만 대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2023년 트럭 생산량 회복할 듯” 
상황이 이러하자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거나 부족한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차체를 미리 조립해 두는 등의 자구책을 통해 밀린 주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트라톤 그룹은 고객 주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부품 공급망을 재정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우선 공급사뿐 아니라 2차, 3차 공급사와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필요한 부품을 적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재고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구상이다. 

다임러트럭도 반도체 공급사로부터 공급량을 늘리기로 협의하는 한편, 반도체가 공급되는 즉시 차량을 완성해 고객에게 인도할 수 있도록 차량의 대부분을 미리 제작해 두는 방식을 채택 중이다. 다임러트럭의 반도체 공급사인 독일 인피니온은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3분기 중 오스트리아에 새 반도체 공장을 열었다.

볼보트럭은 부서 간 긴밀한 소통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마그너스 콕(Magnus Koeck) 볼보트럭 북미 부사장은 “영업 일선부터 생산부서까지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해 차량 인도 상태와 관련한 최신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다.”며, “이 방법이 부품 수급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내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에릭 마크 휘테마(Eric-Mark Huitema)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 사무총장은 지난해 말 성명을 통해 “앞으로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유럽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전략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는 내년부터 해소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 능력은 2022년, 중대형트럭 생산량은 2023~2024년이 되어야 원래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국내 트럭 시장도 반도체 수급난 여파로 지난해 신차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유럽·북미와 달리 전년도와 비교해선 성장세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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