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기업 맞춤형 정책과 제도? 상용차 시장의 ‘기울어진 경쟁’
중견기업 수소버스 출시 일정 줄줄이 지연 속 4,600억 원 규모 수소버스 보조금 현대차 독식 정부 정책과 특정 브랜드 신차 출시 ‘맞물림’ 논란 “특정 기업 중심 구조 벗어나야 산업 경쟁력 확보”
정부가 디젤(경유) 엔진 기반의 중대형 트럭과 버스를 전기·수소 등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하겠다며 국고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상용차 법규와 정책이 국내 특정 기업인 현대차 편의에 맞춰 설계돼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 정책이 발표되기 전부터 특정 기업에만 유리하도록 사전에 조율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정부가 2015년 전기버스 보급 정책을 공식화한 뒤, 현대차는 불과 2년 만에 대형 전기버스 ‘일렉시티’를 시장에 내놓았다.
또 2019년 7월 증톤 완화를 핵심으로 한 ‘화물운송시장 업종 개편’으로 기존 ‘개별’ 업종의 적재중량 한도가 5톤에서 16톤으로 확대됐는데, 현대차는 정책 발표 직후 최대 16톤까지 증톤이 가능한 준대형 트럭 ‘파비스’를 출시하며 시장을 선점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배출가스 규제 도입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모습이다. 수입 트럭 브랜드들이 배출가스 규제 기준 ‘유로6E’ 국내 도입을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특정 기업을 의식한 듯 규제 강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 정책 발표와 현대차 출시의 '절묘한' 타이밍
그간 상용차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 발표와 특정 기업 브랜드의 신차 출시가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며, 업계에서는 정책이 특정 기업과 사전에 조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러한 사례는 수소연료전지버스(이하 수소버스) 부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말 정부가 수소 시내버스 보급 확산 정책을 추진하기로 밝히자 이듬해 현대차는 국내 최초 수소버스인 ‘일렉시티 FCEV’를 선보였다. 사실상 수소버스 시장의 초기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2023년에는 고속·광역형 버스로 활용 가능한 ‘유니버스 FCEV’까지 출시하며, 두 차종으로 수소버스 시장 지배력을 넓혔다.
정책 발표 직후 중견 제조사들도 정부 정책에 따라 재빨리 차량 개발에 돌입했음에도 현재(8월 20일)까지도 출시 예고 소식만 들릴 뿐 시장에 새로운 모델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올해 정부는 수소버스의 경우 연비와 주행거리 등 성능과 차량 규모, 사후 관리 등을 고려해 시내버스(저상)는 총 2,499억 원(대당 2억 1,000만 원×1,190대), 광역버스(고상)은 총 2,106억 원(대당 2억 6,000만 원×810대) 범위 내서 차등 지원 중이다.
연료전지 스택은 41억 3,000만 원(대당 3,500만 원×118개)이 예산 편성됐다. 결국 총 4,646억 3,000만 원가량의 보조금이 집행되는데, 사실상 대부분이 현대차 모델에 들어가는 셈이다.
연이은 출시 지연…특정 기업 기준에 맞춰 재개발
지난 6년간 현대차 외에도 다른 수소버스 대안이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올해 우진산전, 두산 하이엑시움모터스 등 버스 제조사들이 수소버스를 개발·출시할 것으로 예고했다.
특히 우진산전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 상반기 9m급과 하반기 11m급 수소버스를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었으나 출시 예정 시기가 지속적으로 늦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 출시 할 수 있도록 차량을 만들어 놓은 상태 속에서 정부가 구동 방식 기준을 특정 브랜드 모델에 맞춰 변경하면서 개발 과정을 모두 바꿨어야 했고, 그 결과 일정도 전반적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대기업 방식으로 기준을 통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개발 중이던 업체들은 설계를 전면 수정해야 하면서 단순한 출시 지연 문제가 아니라 중견기업이 가진 기술적 차별성이 약화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업계 “특정 기업 중심서 벗어나 공정 경쟁 펼쳐야”
업계는 지금처럼 특정 기업 중심의 구조가 이어지면 시장 자체가 왜곡돼, 결과적으로 한국 수소버스 산업이 국제 경쟁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중견 버스 제조사 관계자는 “시장이 활성화돼야 산업 경쟁력이 생기는데, 지금 구조는 특정 기업의 배만 불리는 상황”이라며, “정부 명분은 중국 차를 막는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다 막아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처럼 가면 나중에 중국 업체들이 수소차로 밀려들어올 때 막을 세력이 없어져 정부가 특정 기업 배불리기만 하다가 결국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는 정부가 특정 기업에 맞춘 정책에서 벗어나 기술 중립적 기준을 마련하고, 중견·수입 브랜드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