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운송시장의 빛과 그늘… 도로 의존도 88%
운송 효율성 뒤에 뿌리 깊은 열악한 운송 환경 영세한 화물차 운전자의 고령화 속 노동강도↑ 수도권 중심의 물류로 단거리·고빈도 특성 보여 영업용 화물차주 97%가 ‘개인’…비대해진 지입 화물운송 업무 디지털화로 물류 효율성 향상도
대한민국 물류 체계는 ‘도로 중심 구조’와 ‘영세 자영업자’라는 두 축으로 굳어져 있다. 전체 물동량의 88%가 도로를 통해 운송되는 ‘화물차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도, 해운, 항공 등 다른 운송 수단은 매우 미미한 비중을 차지할 뿐이다. 중대형 트럭들이 고속도로와 국도를 가득 메운 모습은 대한민국 물류의 현 주소, 빛과 그늘을 동시에 보여준다.
도로 중심 운송은 대한민국 특유의 산업·인구 구조, 좁은 국토 면적과 맞물려 수도권 중심의 단거리 고빈도 운송으로 집중되고 있다. 전체 화물의 3분의 2 이상이 이 반경 안에서 움직인다. 특히 ‘e커머스(전자상거래)’의 성장으로 당일·새벽 배송 수요가 폭증하면서 물류 현장의 속도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빠른 배송’에 익숙해질수록 물류 일선에서는 강도 높은 노동과 저임금, 디지털 전환이라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화물차주들의 생존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국내 화물 수송 분담률 추이(국토교통부 통계누리, 2022)를 살펴보면, 도로 87.6%, 철도 12.3% 항공 0.1%, 해운 0.0% 순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도로 의존 구조는 EU(유럽연합)와 비교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EU 통계국(Eurostat, 2021)에 따르면, EU의 화물 운송량의 3분의 2(67.9%)가 해상 운송이며, 도로 운송은 전체의 24.6%에 불과하다.
한국 물류의 이러한 도로 의존 구조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내륙 운송으로 북한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섬과 같은 구조를 띈다.
이와 동시에 국토 면적이 좁고 주요 산업과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장거리보다는 단거리 반복 운송이 많은 특성을 보인다.
실제로 경기도 이천·용인·김포 등지에 위치한 대형 물류센터들은 트럭 기반의 운송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수도권 내 1일 2~3회 왕복 배송이 가능한 짧은 운송 거리의 특성상 철도나 해운보다 트럭 운송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단거리·고빈도 ‘배송 전쟁’ - 화물 운송 70%가 수도권 200km 이내
도로 의존적 물류의 한 특징으로, 국내 화물 운송은 단거리·고빈도 운송 구조를 보인다. 운송 업계에 따르면, 전체 화물의 약 70% 이상이 수도권 200km 이내에서 운송되며, 적재중량 1톤급의 경우 80% 이상이 수도권 150km 이내에서 운송되고 있다.
특히 e커머스의 폭발적 성장으로 당일 배송·새벽 배송 등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빈도 운송 체계가 산업 전반에 자리 잡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배송 물량 증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단거리·고빈도 운송 체계는 미국이나 유럽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경우 대륙 규모에 맞춘 장거리 트럭 운송 및 철도 운송 비중이 높은 반면, 유럽은 철도, 수로, 해상 운송과 연계된 복합 운송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
단거리·고빈도 운송 체계는 물류 효율성 측면에서는 강점을 갖지만,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화물운송시장 동향 2023년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약 60시간에 달한다. 과로와 안전 문제로 직결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고강도 노동 환경에서 대부분의 운전자가 영세 자영업자인 구조적 특성은 노동 취약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영세 운송업자 중심의 시장 - 사업용 97%가 ‘개인’…지입제 종속 심화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요인은 스스로가 ‘사장님’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영업용 화물차 44.5만 대 중 개인 소유 화물차가 43.2만대로 전체의 97%에 달한다.
특히 적재중량 1톤 트럭을 모는 개인 화물차주의 지입사 소속 비율은 0.9%에 불과한 반면, 적재중량 12톤 이상 트럭을 운행하는 일반 화물차주의 지입사 소속 비율은 89.4%에 이른다. 이는 톤급이 높아질수록 스스로가 사업을 책임지면서도 안정적인 물동량 확보를 위해 지입사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장 구조는 유럽과 미국의 기업형 운송사 중심 체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들 국가에서는 대형 운송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며 운송 품질과 서비스 표준화가 정착되어 있고, 화물차 운전자의 고용 안정성과 근로 조건이 보장된다.
영세 운송업자 중심의 구조는 유연성과 민첩성 측면에서는 강점을 가지나, 고용 안정성·복지·노동 조건 측면에서는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2022년 6월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표출된 바 있다. 당시 운송료 보장제(안전운임제)의 연장을 요구하며 발생한 파업은 생계 불안과 과도한 경쟁, 불합리한 단가 체계가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디지털 물류’로의 빠른 전환 - ‘콜어플’로 운송 효율성 증가에도 운임↓
영세 자영업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의 IT(정보통신) 기반 시설이 화물 운송 산업에서도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전국24시콜화물’을 비롯해 화물복지재단의 ‘화물나누리’, 현대커머셜의 ‘고트럭’, ‘원콜’, ‘오콜’, ‘센디’, ‘화물맨’ 등 배차를 위한 다양한 ‘콜어플’ 앱이 활성화되어 있다.
화물 운송 업무도 디지털화됐다. 영업용 화물차주들은 국세청의 모바일 홈택스와 은행 앱(application)으로 세금계산서 발급과 입출금까지 차량 안에서 처리하고 있다. 상기 명시된 콜어플 내에서도 진행이 일부 가능하다. 경로 탐색에도 ‘티맵’, 화물차 전용 내비 ‘아틀란트럭’, ‘네이버지도’, ‘카카오내비’ 등 다양한 내비게이션 앱이 활용되고 있다.
대기업들도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CJ대한통운 등은 AI 기반 배송 경로 최적화, 실시간 트래픽 분석 시스템 등을 도입했으며, CJ대한통운의 TES 물류기술연구소는 AI·빅데이터 기반 자동배차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은 중소 화물차주의 화물 접근성을 높이고, 공차율 감소를 통한 물류 효율 향상 등의 장점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수료 부담과 경쟁 심화로 인한 운임 하락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전환은 효율성 향상에 기여하지만, 운전자들의 고령화와 인력난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운전자 고령화·신규 인력 부족·고강도 노동 - 평균 연령 57.2세로 ‘지속 가능성’ 미래 위협
국내 화물 운송 시장은 심각한 인력 고령화와 신규 진입자 부족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형트럭을 몰고 있는 화물차 운전자의 평균 연령은 2023년 기준 57.2세에 달하며, 70세 이상 운전자 비중이 6.2%에 이른다. 이는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고령화 지표다.
고령화 문제와 함께 청년층의 진입 저조는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화물 운송업은 청년층의 기피 직종으로 분류되며, 차량 구매, 보험, 초기 운영비 부담 등 높은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관련 업계는 화물운송 직종 고용안정성 제고 및 청년 유입 유도, 고령 운전자의 정밀검사·적성검사 강화, 볼보트럭의 여성운전자 양성 프로그램 등 다각도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화물차 운전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과도한 반면, 평균 수입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차급이 높아지고 고정 화물을 확보했다면 순수입이 늘어나긴 하지만, 단순 종사자수가 많은 소형급까지 아울러 평균을 내보면, 월평균 순수입은 월 250만~300만 원대로 수준이다. 유류비·차량유지비를 제외하면 실수령액이 200만 원 이하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운송노동 환경의 열악함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럽은 집단협약·노동법을 통해 운전자의 근로시간, 휴식 시간, 최저 임금 등을 엄격히 규제하는 반면, 한국은 개인화된 자영업자 구조로 인해 이러한 보호 장치가 미약하다.
친환경·표준화 등 선진국과의 심한 격차 - 친환경 화물차 보급률 미미하고 표준화도 미흡
적재중량 2톤 이상 트럭은 사실상 100% 디젤 기반 트럭이라 해도 무방하다. 1톤급 소형트럭 역시도 2020년부터 전기트럭이 활성화됐지만 현재는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화물 운송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 산업 배출량의 7% 이상, 그 중 도로 운송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지만, 중대형 트럭의 친환경 패러다임 전환은 깜깜하다.
이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전기트럭과 수소 상용차 도입을 추진하는 것과 대조된다. 환경부와 국토부는 2022년 12월 ‘탄소중립형 물류체계 구축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현실적인 전환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표준화 부분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이원화된 팔레트 규격, 적재 방식 등의 표준화가 미비하여 물류 효율이 낮고, 반복적 하역이 빈번하다. 유럽의 경우 EU 차원에서 팔레트, 컨테이너, 포장 등의 표준화가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다.
친환경 차량 전환의 경제적·인프라적 제약도 문제다. 1.5톤 전기트럭 기준 6,000만 원 이상의 높은 초기 비용과 영세차주의 교체 여력 부족이 주요 장애물이다. 한국도로교통공사에 따르면, 금년 3월 20일 기준 전국 208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총 1,481기의 전기차 충전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소형 트럭에 국한될 뿐, 중대형 트럭 충전소와 관련된 예산은 배정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의 2030년까지 전기·수소 트럭 비중 10% 이상 확대 목표가 실현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의 트럭 중심, 디젤 중심, 영세 자영업자 중심의 구조적 특성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정책적 전환과 산업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