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방 시야 확보 안 된 화물차, 사고율 더 높아
사상자 年 4천 명…후방안전 강화할 제도 필요
장착기준 강화하고 후방 카메라 설치 독려해야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는 ‘아킬레스건’. 불사(不死)의 몸을 가진 그리스 신화 속 전쟁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아킬레우스가 발뒤꿈치에 있는 아킬레스건을 보호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했듯, 긴 차체와 적재물 등으로 후방 시야 확보가 어려운 화물차에 후진은 인사사고를 부르는 치명적인 약점. 즉,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적재물을 가득 실은 채 운행하는 경우가 잦은 화물차는 후방 시야 확보가 어렵다. 후방 카메라 등 후방 시야 확보를 위한 안전장치 장착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5년간 차량 후진 중 발생한 인명 사고는 1만 8,527건, 이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 사상자 수는 1만 9,624명에 이른다. 연간 3,9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 중 화물차로 인한 사망사고 비율은 53.6%로 절반에 이른다. 화물차가 전체 차량 등록대수의 20.1%를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비중이다.

특히, 5톤 미만 카고형 화물차에 의한 사망사고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톤 미만 카고형 화물차의 후진 중 차대 보행자 사고 기준 사망률은 33.5%로, 5톤 이상 화물차가 기록한 11.6%의 3배에 달했다. 

문제는 이 같은 후진 중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화물차 후방 안전장치 장착 규정과 실효성이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의무 장착 대상에 드리운 ‘사각지대’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국내에서 후방 안전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대상은 5톤 이상 또는 적재함이 설치된 대형 화물차, 밴형 화물차, 어린이용 승합차 등으로 한정된다. 

이는 전체 화물차의 23.1%에 불과한 수준으로, 현재 국내 5톤 미만 카고형 화물차에 대한 후방 안전장치 장착 규정은 전무한 실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5톤 미만 카고형 화물차가 후진 중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후방 안전장치 의무화 장착 대상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사각지대 측정 결과에 따르면 5톤 이하 카고형 화물차의 사각지대 범위는 평균 2.8m~11. 6m인 것으로 나타났다. 측정 차량의 운전석 높이와 적재함 길이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상당히 넓은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적재함에 화물을 가득 채우고 운행하는 경우가 잦은 5톤 이하 카고형 화물차의 특성상 아예 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안전상의 우려가 큰 실정이다. 

이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는 지난 2014년 4월부터 후방 안전장치 의무 장착 대상을 이륜차와 트레일러를 제외한 총중량 4.5톤 이하의 모든 차량으로 확대했지만,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5톤 이하 카고형 화물차 사각지대 측정 결과. 실험 차량은 국내서 판매 중인 현대자동차의 포터, 마이티, 메가트럭. (자료: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후방 카메라 외면케 하는 ‘설치 규정’

후진 시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 후방 카메라 설치를 외면케 하는 설치 규정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법안에 따르면 후방 안전장치 의무 장착 대상 차량은 ‘후방 경보기’ 또는 ‘후방 카메라’ 둘 중 하나를 설치하도록 규정돼있다.

후방 카메라에 비해 인지범위가 좁고 후방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후방 경보기가 여전히 많은 운전자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다.

실제로 국내에서 차량을 판매하고 있는 A업체의 후방 안전장치 옵션을 살펴보면, 후방 경보기는 대부분 차량의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거나 평균 20만~25만 원대로 설치할 수 있는 반면, 후방 카메라 설치비용은 평균 80만~120만 원대로 간극이 컸다.

이에 일각에서는 법안 개정을 통해 미국과 같이 후방 카메라 장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 하더라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후방은 안전상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성능 검증할 ‘인증기준’도 부재
후방 안전장치를 장착하는 것과 별개로 장치의 성능을 인증할 제도적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성능 기준 자체가 없는 후방 경보기는 예외라 하더라도, 후방 카메라에 대한 제도적 인증기준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후방 카메라는 출고 시 실제 성능과 관련 없는 전자파 기준 검사만 받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자동차 정기검사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장착 여부에 대해서만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별도의 설치 의무 규정이 없는 블랙박스가 출고 이전 한국산업규격인 ‘KS인증’ 기준의 성능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기준으로 생산되는 후방 카메라는 해외 기준에 비해 관측범위가 좁고 화면 응답시간, 이미지 크기 등 세부 성능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후방 카메라 장착 대상 확대와 더불어 성능 개선을 위한 제도적 손질이 필요한 이유다.

이와 관련 업계 한 전문가는 “화물차 후진 중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후방 안전장치 의무 장착 대상을 확대하고 후방 경보기와 후방 카메라를 모두 장착하도록 설치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며, “미국과 같이 후방 카메라 도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자체 성능 기준 또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화물차 후방 시야 확보를 위한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경북도는 지난 3월부터 ‘대형 화물차 후방 카메라 장착비 지원사업’에 13억 5,000만 원을 투입, 올해 3,000대를 시작으로 2019년까지 화물차 9,000대의 후방 카메라 장착을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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