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서 2021년 도입 천명
운전자, 화주 등 이해 당사자 간 합의점 도출이 관건
상대적으로 정부 개입 정도 높은 일본…시사점 주목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며 공약으로 내세운 화물운송시장 표준운임제 도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화물운송업계에서는 표준운임제의 근간인 적정 운송료 적용을 놓고 화물차주, 화주, 운송업체 등 이해 당사자 간의 입장차가 커, 표준운임제 도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국내 화물운송시장은 사고 차량이나 컨테이너 등 일부 운송품목을 제외하고는 자율적으로 운임을 선정하는 ‘자율운임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자율운임제도는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화주와 운송업체가 운임을 협의해 책정하고 화물차 운전자가 해당 운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써 상대적으로 을에 위치에 있다.
이와 맞물려, ‘다단계 거래구조’ 또한 저단가 운임의 주범으로 꼽힌다. 지역, 계절, 시기별 물동량의 차이로 인해 운송업체는 일정 수준의 운송능력만 보유하고 초과물량은 하청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가령 대형 화주들이 1,000톤의 화물을 보내는 운송의뢰를 운송업체 A사와 계약했다고 하자. 하지만 A사는 300톤의 운송능력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700톤을 주선업체를 통해 다른 운송업체인 B사에 운송을 의뢰한다.
마찬가지로 B사도 300톤만 운반하고 주선업체를 통해 나머지 물량을 넘긴다. 이 과정에서 단계를 거칠 때마다 관행적으로 5~10%의 수수료를 주선업체들이 챙기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종적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차주의 운임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낮은 수입을 메우기 위한 과로·졸음운전 등이 성행해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임제도 개선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8월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공개하며, ‘참고원가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강제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남기고 계류 중이다.
이에 화물차 운전자들 사이에선 화물연대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꾸준히 언급되어온 ‘표준운임제’ 도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새 정부도 물류 분야 주요 공약으로 표준운임제 도입을 내세우고 ‘화물자동차운송시장 운임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관한 용역을 긴급 입찰하는 등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0년 전 새롭게 부각된 ‘표준운임제’
표준운임제가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며 주목받던 것은 2007년부터다. 당시 화물운송업계는 화물차 운전자의 운임이 최저생계비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에 힘입어 화물연대는 2008년 표준운임제 도입을 골자로 총파업을 감행했으며, 이에 정부와 함께 도입 검토를 위한 ‘표준운임제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2012년 위원회를 통한 표준운임제 도입 추진은 결국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화물연대와 일부 국회의원에 의해 법 개정안 형태로 국회에 발의되던 표준운임제 도입은 그간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지난 7월 19일 새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됨에 따라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18년 화물자동차법을 개정하고 2020년 표준운임 산정위원회 구성·운영 등을 통해 2021년부터 표준운임제를 본격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해 당사자 간 이견 심화…도입 시 진통 예상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해 관계자들 간의 의견 불일치로 위원회가 무산된 과거의 선례를 살펴봤을 때 이번 표준운임제 도입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표준운임제 도입으로 엮인 이해 관계자들을 크게 분류하자면 일선에서 물건을 운송하는 ‘화물차 운전자’와 물건을 공급하는 ‘화주’, 그리고 화주에게서 공급받은 물건을 화물차 운전자와 연결시켜주는 ‘운송사업자’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먼저 화물차 운전자 측은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화물운송시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몸소 겪고 있는 입장에서 표준운임제 도입으로 다단계 거래구조의 틀을 깨고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화주 측은 화물의 무게와 부피, 대기시간, 상하차 난이도 등 운송조건이 다양해 표준운임 책정이 쉽지 않다는 점과 함께 상품 원가 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며, 표준운임제 도입만으로는 오랫동안 자행되어온 다단계 거래구조와 지입제 등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운송사업자 측도 현재 ‘신고운임제도’로 요금을 제도화하고 있는 컨테이너 운송 차량의 운임이 실질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표준운임제 도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임설정 자유로운 일본, 비상 시 정부 개입
이처럼 표준운임제 도입을 두고 이해 관계자들 간의 입장차가 뚜렷한 가운데, 화물운임제도를 시행하는 해외의 경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까운 예로, 일본을 들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일본이 채택하고 있는 화물운임제도는 2003년 도입된 ‘사후신고제’로 사실상 운임설정이 국내처럼 자유롭다.
다만, 국내와 가장 큰 차이점은 화물운임 또는 요금이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사회 경제에 비추어 부당할 경우 정부가 표준운임을 설정하여 시장의 혼란을 제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일본 정부는 운송거래 시 상황별 해결책, 가격협상 노하우, 문제해결 상담처 소개 등의 내용을 담은 ‘운임협상 노하우 가이드북’을 제작·배포하는 간접 지원책도 펼치고 있다.
국내 시장과 환경이 다른 이상 일본의 화물운임정책을 성공한 사례로 볼 수만은 없겠지만 화물운송시장선진화 방안 등으로만 개입을 시도하는 국내와 비교했을 때 정부의 개입 정도가 높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안겨주는 것만은 분명하다.